
평범한 직장인이 월급을 모아 내 집을 마련하는 시대는 과연 자본주의의 ‘정상적인 모습’이었을까, 아니면 특정 시기에만 가동되었던 ‘역사적 우연’이었을까.
29일(현지시각) 포춘에 따르면 미국 하버드 대학 주택연구센터(JCHS)가 최근 발간한 ‘2026년 미국 주택 동향(State of the Nation’s Housing)’ 보고서는 단순히 주택 가격의 고공행진을 넘어, 미 중산층의 근간을 흔드는 거대한 구조적 균열을 경고하고 나섰다. 전후 수십 년간 미국인들이 당연하게 여겼던 ‘중산층=주택 소유’ 공식이 전례 없는 위기를 맞이하며, 부동산 시장이 노동이 아닌 ‘상속’에 의해 재편되는 세습 경제학의 장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더 이상 노동으로 메울 수 없는 격차”…치솟는 소득 대비 주택가
과거 전후 미국 사회는 참전용사 지원법(GI Bill), 연방 주택담보대출 보증, 대규모 고속도로 건설을 통한 저렴한 토지 공급, 그리고 강력한 노조 중심의 임금 상승 분위기가 맞물리며 중산층의 내 집 마련 붐을 이끌었다.
하지만 현재 미국 부동산 시장의 scaffolding(버팀목)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기준 미국의 기존 단독주택 중위 가격은 가구 중위 소득의 5배에 달한다. 1990년대 평균치였던 3.2배와 비교하면 소득과 자산 가격 간의 격차가 거대한 심연으로 변했음을 알 수 있다.
30년 만기 고정금리를 적용한 주택담보대출(모기지) 월평균 상환액은 약 2420달러로, 팬데믹 직전인 2020년 말과 비교해 두 배 가까이 폭등했다. 현재 미국 임차 가구 중 이 주택을 구입할 수 있는 최소 소득 기준(12만800달러)을 충족하는 가구는 단 16%에 불과하다. 7만5000달러 이하 소득자가 접근할 수 있는 매물 비중 역시 2019년 49%에서 올해 3월 23%로 반토막이 났다. 기존 주택 거래량이 30년 만의 최저치로 주저앉은 배경이다.
노동 시장의 침체와 이민 급감…수요 기반의 붕괴
더욱 심각한 것은 거시경제 지표들이 이러한 자산 격차를 메워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미국 경제는 비불황기 기준 2003년 이후 가장 적은 규모인 11만6000개의 일자리를 추가하는 데 그쳤다. 해고도 적지만 고용도 하지 않는 ‘낮은 회복력(low-hire, low-fire)’ 장세가 이어지면서 청년층의 소득 모빌리티(이동성)가 극도로 제한됐다. 팬데믹 시기의 학자금 대출 유예 조치가 끝나자마자 연체율이 10%대로 치솟은 점도 청년층의 자산 형성을 가로막는 대목이다.
주택 시장의 잠재적 수요층인 가구 성장세도 3년 연속 둔화해 지난해 110만 가구에 머물렀다. 주택 시장의 든든한 하방 지지대 역할을 하던 이민자 유입 역시 급감했다. 2024년 270만 명에 달했던 순 국제 이민자 수는 지난해 130만 명으로 줄어들었으며, 올해는 32만명 수준까지 고꾸라질 것으로 관측된다. 하버드 연구진은 “이민 감소가 가구 성장 둔화에 미치는 영향은 향후 주택 시장에서 더욱 뚜렷하게 가시화될 것”이라고 짚었다.
‘노동’에서 ‘상속’으로…자산 세습 메커니즘의 고착화
이번 보고서가 던지는 가장 묵직한 거시적 화두는 주택 소유가 더 이상 ‘노동을 통한 성취’가 아니라 ‘자산의 대물림’ 영역으로 진입했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4분기 기준 미국 주택 소유주들의 총지분(Equity)은 34조달러로, 2019년 이후 무려 88%(16조 달러)나 폭증했다. 주택 소유자 1인당 평균 29만5000달러의 자산 버퍼를 쥐고 있는 셈이다.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의 조사에 따르면, 자가를 보유한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들은 임차인 가정의 자녀보다 30세 기준 약 3분의 1 더 많은 주택 자산을 축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미경제연구소(NBER) 역시 최근 논문에서 “주택 자산의 세대 간 지속성이 일반 근로 소득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고 분석했다.
결국 부모의 자산 지원을 받지 못하는 첫 주택 구매자의 평균 연령은 40세로 밀려났고, 전체 거래에서 첫 구매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21%로 역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35세 이하 청년층의 주택 소유율은 37%로 주저앉았다. 과거 2000년대 초반 무리한 주택 소유 확장이 금융위기(Great Recession)를 불렀다면, 지금은 그 흐름이 완전히 역전되어 시장이 극단적으로 보수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시장의 냉혹한 결론: 자산형과 임금형의 단절
여기에 연방 정부의 정책적 후퇴도 시장의 자생적 회복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 지원 혜택은 대상 가구의 4분의 1에만 미치고 있으며, 주택도시개발부(HUD)의 공공주택 예산 및 차별 금지 관련 인력은 대폭 축소됐다.
과거 미국의 주택 붐이 흑인 등 유색인종을 배제했던 ‘불완전한 사다리’였다면, 지금 일어나는 주택 시장의 장벽 강화는 소득 4만5000달러~7만 5000달러 사이의 백인 중산층 가구까지 무차별적으로 삼키고 있다.
결국 현재의 글로벌 고금리 기조와 매파적 연준의 스탠스, 그리고 약화된 노동 시장은 단순한 단기 헤드위드가 아니다. 이는 주택 시장을 ‘자산을 가진 자’와 ‘임금에 의존하는 자’로 완전히 갈라치기 하는 구조적 체계(structural feature)로 고착화되고 있음을 뜻한다.
하버드의 2026 보고서가 우리에게 던지는 궁극적인 질문은 명확하다. 노동으로 자산을 축적하는 시대의 종말, 즉 ‘소득’이 아닌 ‘상속’에 의해 계급이 결정되는 새로운 부동산 잔혹사에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는 점이다. 중산층의 내 집 마련이라는 아름다운 윈도우는 이미 닫혔다.
KMNEWS 심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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